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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김선동의 이야기

박종철열사 31주기를 맞으며

눈이 잘 내리지 않기로 유명한 순천에도 오늘은 서설이 내리고 있다.
영화 ‘1987’ 이 화제가 되고 있는 듯 하니 31년 전 요즘이 생각난다...

31년 전 오늘 즈음에 나는 경기도 송탄시 장안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송탄시는 지금은 평택시로 통합이 되었지만 장안동은 아마 그대로 있을 것 같다...

당시 장안동은 말이 동이었지 사실은 시골 면지역 이었다. 평택고를 졸업하고 고려대로 진학한 물리학과 동기 차관병을 찾아서 갔다...
...
가는 길에 동행했던 친구는 경기도 고양시 출신의 물리학과 동기 김한수 였다..

우리 셋은 모두 고려대 물리학과 85학번으로 동기생이었는데 1986년 12월 22일 경부터 차례로 전두환 독재정권의 공안기관에 끌려가서 물고문을 당하고 그 지옥같은 곳에서 1987년 1월 초에 이제 막 석방되어서 서로 만나 생사와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모이는 길이었다...

‘애학회’라고 했던 고려대학교 학생운동 비밀조직의 성원으로 안기부에서 추정한 ‘이00’라는 생물학과 84학번 학생의 소재를 불라는 것이 우리를 불법연행해서 물고문한 이유였다...

우리는 그의 소재를 알 지 못했기에 불 수 없었고 맨 나중에 고문받는 나는 알면서도 불지 않는 독종이라고 더 험하게 고문을 당했다.. 왜냐하면 1986년 12월 22일까지 ‘이00’학생은 나의 자취방에서 기숙을 했고 12월 23일 새벽에 떠났기 때문이다...

그때 물고문을 받으면서 나는 정말로 죽을 것 같았다. 가슴이 터지고 찢어지는 고통으로 기절했다가 깨어나 보면 인체의 모든 구멍에서 분비물이 흘러나왔다... 미처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오직 내가 여기서 죽게 되었구나! 이대로 속절없이 죽고 마는구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
이대로 죽는다고 생각하니 내 인생과 내 부모형제가 불쌍해서 견딜 수 없었다...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운명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모대기며 잘 살아보겠다고 아둥바둥했던가...
나와 나에게 모든 희망과 기대를 걸고 인생을 바친 내 부모와 나로인해 자기들의 인생을 포기하고 희생한 형제들이 불쌍해서 참으로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억울해서 견딜 수없었다... 고문하는 놈들의 비인간성에 분노할 겨를도 없이 오직 억울하다는 생각 뿐이었다...
정말이지 알았더라면 불고 싶었다...
‘이00’라는 학생의 소재를 내가 분다고 해봤자 찍해봤자 징역 6개월 전후이고 잘하면 집행유예로 석방 될 것인데... 고작 그까짓 것 때문에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억울했다...

더구나 ‘이00’학생은 학생운동도 별로 열심히 하지 않고 별로 신뢰도 주지 못하고 학생들 사이에서 신망도 별로 없고... 성신여대 축제에나 죽자고 기웃거리던 나보다 못해도 한 참 부족해 보이는 별볼일 없는 학생인데... 그런 학생의 징역살이 몇개월 때문에 내가 죽어야 한다니 견딜 수 없이 억울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고 물고문의 고통 이상의 고통이 온몸 뼈마디에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 후로 알 필요가 없는 것은 알려고 하지 않았고, 알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는 알려주지 않는게 습성이 되었다...
또한 학생운동 노동운동 진보운동 제대로 하지 않을려면 차라리 부모한테 효도하는 삶이 더 가치있다고 다짐하고 평생의 신조로 삼게 되었다...

지켜줄 가치가 없는 운동가는 되지 말자...
서로를 지켜줄 수 있고 서로가 지킬 가치가 있는 운동가가 되자고 피눈물을 삼키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1987년 1월 초순경 잔인한 물고문 피해자였던 우리 셋은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 우리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서 할퀴고 간 독재정권의 인간성파괴에 맞서 서로의 안부를 챙기고 해어졌다....

“ 야! 힘내자! 물고문 따위로는 우리의 몸뚱아리도 죽이지 못하잖아? 하물며 우리의 정신과 기백을 어찌할 수 있겠냐? 굴복하지 말고 더 강하게 싸우자!”

그래서 우리는 87년 6월항쟁 내내 그해 겨울 대통령 선거까지 그리고 구로구청 점거투쟁까지 목숨을 걸고 싸웠던 것 같다...

그래도 박종철 서울대 학생이 물고문으로 살해되었다는 뉴스를 접한 그 때, 31년 전 1월 중순 경에 나는 우리가 죽음의 사지를 건너왔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고 등골이 싸늘해졌던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머리속이 하애지던 그 순간...
“ 아 ! 나도 우리들도, 그곳에서, 그 지옥같은 곳에서 진짜로 죽을수도 있었구나! 진짜로, 진짜로! 저런 살인 독재정권하고는 한 하늘아래 살 수 없겠구나!“

우리는 그 마음으로 지난 31년을 보내려고 노력했고, 그때 그마음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그 때 그 마음이 흔들릴 때 쯤이면 서로 만나 격려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때론 그 때의 아픈 상처를 다시 할퀴기도 하면서 우리 셋은 그럭저럭 그때의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전대협을 만드는데 함께하던 마음으로 전노협과 민주노총을 만드는데 함께했고,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을 거쳐, 오늘의 민중당을 만드는데 함께 하고 있다...

눈이 귀한 순천에서 모처럼 휘날리는 눈발을 보며
31년 전 물고문 받고 상처난 몸과 마음이지만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 사람의 길을 가기 위해서 다시 싸우자고 결의하며 함께 걷던 송탄 장안동의 눈길이 눈에 선하다...

누구의 말마따나
눈길을 걸을 때, 함부로 걷지 말아야 한다...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뒷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8.01.10 페이스북에 올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