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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선 정보/언론관련

(17.03.26.)[민중의 소리] 정혜림의 대화 - 김선동 민중연합당 대선후보 “서 있는 데가 바뀌지 않는 정치가 필요하다”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드라마 송곳의 대사다. 이 명대사는 어쩌면 여의도에 가장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경향 각지에서 여러 직종의 사람들이 대한민국 정치1번지 여의도로 모인다. 그리고 ‘정치인’이 된다. 그 때부터 많은 정치인들은 서 있는 곳이 바뀐다. ‘여의도’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간혹 ‘서는 데’를 바꾸지 않는, 혹은 바꾸지 않으려 노력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아직까지 이런 정치인들은 정치적 성공을 잘 이루지 못했다.

이번 대선의 키워드는 ‘변화’다. 많은 정치인들이 ‘적폐’를 청산하고 우리사회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겠다고 밝힌다. 정치인들이 만들 ‘변화의 방향’은 어쩌면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나오지 않을까.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에서 열린 민중연합당 대선후보 선출대회에서 김선동 후보가 발언대에서 연설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민중연합당 대선후보로 나선 김선동 전 국회의원은 ‘서는 데’를 바꾸지 않는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김 전 의원이 이 문제의식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는 노동자 출신으로 정치를 시작했고 국회의원 자리에서 내려와서 (박탈되고 나서) 다시 현장 노동자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대선후보가 되겠다고 선언하기 직전까지 그는 건설현장에서 망치를 잡고 일을 하는 현장노동자였다. 그의 직업은 ‘배관공’이기도 하고 ‘정당인’이기도 하다. 그는 ‘현장에 서서 여의도를 바라보며 정치를 하는’ 정치인이다.

왜 다시 현장노동자가 되었느냐는 질문에 김 전 의원의 대답은 두 개였다. “한국 정치가 현장의 아픔, 희망에 함께 할 수 있는 정치가 되려면 여전히 정치인들이 더 현장에 가야 한다.” 이런 말은 이미 많은 정치인들이 했고 지금도 하는 말이다. 두번째 대답은 이렇다. “다른 생계수단이 없기도 합니다.” 잠시 국회의원이 되어 여의도에 있었지만 그가 서있는 곳은 현장이었다. 노동현장은 그에게 ‘경험’을 위해 혹은 서민의 삶을 ‘공부’하기 위해 잠시 찾는 곳이 아니다. 삶의 터전이며 그 자신이 노동자다. 그는 서있는 곳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김 전 의원이 이번 대선에서 주장하고 싶은 첫번째 정책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이다. 희망일 뿐 현실적이지 않다는 비판에 직면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답했다. “같은 일을 하고도 절반에 못미치는 임금을 받는 차별”이 이 시대의 가장 깊숙하고도 근원적인 모순이라는 것이다. 기업은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고 청년들에게는 비정규직 밖에 없게 되고, 결국 청년들은 미래를 포기하는 악순환이 돌고 있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 그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바로 ‘동일임금이면 동일노동을 받는’ 것이다.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에서 열린 민중연합당 대선후보 선출대회에서 김선동 후보가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우리사회를 70년간 짓눌러왔던 ‘적폐’의 정점에 있던 박근혜 세력이 일순간에 무너졌다.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주권자’ 국민이 단결한 결과다. 김 전 의원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만드는 힘도 같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에게 단결할 수 있는 권리, 회사와 교섭할 수 있는 권리,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잘 보장해주면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한다고 했다. 꿈같은 말로 들린다. 그냥 책 속에 있는 원론이지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변화의 시대에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꺼내드는 것이 ‘변화’를 만드는 힘은 아닐까. 헌법에 존재했지만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던, 어쩌면 현실에서 과연 가능할까 의문을 품었던 주권자의 단결과 행동이 변화의 물꼬를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김 전 의원은 ‘물리학도’의 꿈을 가지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그의 대학시절은 ‘물리학’이 아니라 ‘반독재’로 꽉찼다. “이게 다 전두환 때문입니다.” 김 전 의원은 웃으면서 말했다. 87년 6월 항쟁의 전초전이라고 불리는 5월 23일 종로 연와시위에 참여하고 1988년 미문화원 점거투쟁에 나섰다가 구속됐다. 대학에서는 제적됐다. 1989년 그는 노동현장으로 갔다. 많은 학생운동 출신들이 잠시 ‘서는 곳’을 노동현장으로 택했다가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노동자로 살고 있다. 그는 흔들림과 번뇌없이 신념을 지킨 사람일까? 아니다. 그도 번뇌했고 흔들렸으며 심지어 수배생활 끝에 가족을 찾아가 ‘이제 노동운동 그만하고 돈을 벌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기도 했다. 그를 현장으로 되돌려 보낸 것은 “남은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느냐”는 어머니의 걱정이었다. 그 후로도 그는 많은 흔들림을 마주했지만 30년 전 어머니의 말은 그의 삶에 ‘좌표’가 됐다.

대선후보로 나서고 그가 찾는 곳도 현장이다. 그는 노동문제의 근본을 다시 생각하자는 주장에 이어 ‘농업농촌농민을 살리는 농업대혁명’을 이루자고 주장했다.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될 때까지 희생만 당해온 농민들을 위해서도, 기후이변이 일상이 되어가는 미래에 제기될 ‘식량안보’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진보정치의 양대 축이었으나 지금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문제를 대선에서 가장 호소하고 싶은 주제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민중연합당 대선 후보 김선동 전 의원과의 ‘정혜림의 대화’ 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