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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의 아들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
“역사가 두렵지 않느냐. 에프티에이는 안 돼.”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은 국회 경위들에 의해 본회의장 바깥으로 끌려나오며 소리쳤다. 준비해간 최루탄을 터뜨려 본회의장이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분을 삭일 수 없었다.
2011년 11월22일 오후4시쯤, 한나라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을 군사작전 치르듯 비공개 ‘날치기’ 통과시켰다. 막판까지 논란이 되었던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등 모든 독소조항도 그대로였다. 김 의원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에 대한 저항으로 최루가스를 뿌렸지만 정작 자신이 대부분의 가루를 허옇게 뒤집어쓰고 눈병에 시달리는 중이다.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테러다!”라고 소리쳤고, 폭력으로 국회를 모욕했다는 혐의로 형사처벌까지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파장이 일고 있다. 하지만 그는 국회 앞 기자회견에서 “안중근 의사의 심정으로, 윤봉길 의사의 심정으로, 서민을 짓밟고 서민의 운명을 깔아뭉개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안중근·윤봉길 의사도 일본제국주의나 친일반역자들의 입장에서는 ‘테러분자’였을 터이니, 김 의원은 “책임져야 할 건 책임지겠다”는 입장이다.
군부독재의 상징물이던 최루탄을 한국 정치의 심장인 국회 본회의장에서 터뜨린 김의원의 모습은 여러 갈래로 논란이다. 하지만 국가와 국민의 명운이 걸린 통상협상안이 강압적으로 결정되는 기막힌 현실과 그로인한 공포를 드러내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서민의 눈물을 생각하라며 최루가루 뿌려
“진짜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단 한 사람이라도 확실하게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에프티에이가 서민들 피눈물 강요하는 건데 이걸 처리하면서 서민들 흘릴 눈물 생각해봤느냐, 느그들도 눈물을 한번 흘려보아라 그런 심정이었다. 그걸 분말로 뿌릴라고 했는데 잘 안되어서…던지면 문제가 커지고, 그래서 제 손에 들고 있는 상태에서 폭발했다. 손이 날라가는 줄 알았다. 사실 역풍을 최소화 하려고 제 손에서 터뜨리고 제가 가장 많이 둘러썼다.”
그는 지난 4·27 보궐선거에 당선된 뒤 이틀만인 4월29일 의원선서를 했다. 제일 먼저 떨어진 일은 5월2일 한-EU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의 ‘날치기’ 통과를 막는 것이었다.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하고 농성을 했다.
“그때 반대토론을 보장해주면 농성을 풀겠다고 했는데 박희태 의장이 약속을 해줬다. 먼저 이정희 대표가 발언을 하는데…. 야유하고 조롱하고 희롱을 하는데, 아! 정말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걸 지적하며 토론에 나서려는데 토론 종결선언을 해버리고 발언기회를 안줬다. 그때 웃으면서 뒤돌아서는 한나라당 의원들한테 ‘대한민국 서민들 죽이는 당신들 서민들한테 죽을 것이요’ 외쳤다. 그런데 참 공허하더라.”
그가 국회 상임위원회 가운데 외교통상위원회를 선택한 결정적 이유가 바로 한-EU 자유무역협정이었다. 천만다행으로 그 협정은 독소조항이 많지 않았다. 농수축산과 유통분야 개방을 많이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전혀 달랐다.
“국내 독점재벌의 정치력만으로는 복지국가로 가는 대한민국의 추세를 막지 못하니까 미국의 다국적, 초국적 기업들과 국내 독점자본들이 교묘한 장치로 그걸 막는 게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다. 그러니까 한미 양국의 1% 독점자본들을 위해 나머지 99%가 희생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재협상을 통해 자국의 나머지 99%를 위한 조정을 했는데 우리는 전혀 못했다. 이건 보통의 에프티에이랑 질이 다르다. 외국인 투자에 대한 각종 법외적 특혜의 연결고리가 바로 아이에스디다. 원래 중재란 양당사자가 합의해야 절차에 들어간다. 기존에는 투자자가 우리 정부를 중재재판부에 회부하려면 우리 정부가 동의해야한다. 안하면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면 투자자는 자국 정부에게 호소해 자신을 대신해달라고 한다. 그래서 국가대 국가 중재절차인데 이제는 외국 투자자가 직접 우리 정부에게 피해보상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투자라는 것이 이익이든 피해든 스스로의 책임이며 또 일정정도 위험을 감수하는 것인데, 아이에스디는 애초부터 미국 투자자의 이익을 보장해줘야 하는 꼴이다. 외국인 투자자의 이익에 반할 경우, 우리 정부는 국민들을 위한 각종 경제, 복지 정책을 할 수 없는 상황까지도 닥칠 수 있는 것이다.
“중재라는 것이 최소 비용이 100만 달러다. 우리나라도 미국도 일반투자자는 엄두도 못낸다. 독점자본들만 하는 것이다. 또 이건 패소 쪽이 승소한 쪽의 비용을 부담하는 게 아니라 이기든 지든 절반을 대야한다. 이번에 미국의 투자회사가 체코 정부를 상대로 제소를 했는데 배상액으로 우리 돈 4천억원을 받았다. 소송비용으로 100억원이 넘게 들었다. 그래서 ‘된서리 효과’하는 말이 나온다. ‘아이에스디로 건다’ 하면 쫄아서 정부가 정책을 못펴는 것이다. 멕시코 정부가 ‘마일드 세븐’ 담배에서 ‘마일드’라는 말이 유해성을 감추는 것 같아 못쓰게 하려다 없었던 일로 해버렸다. 아이에스디가 무서워서다.”
▲ 사진출처 - 이치열
“돌이킬 수 없는 재앙…반드시 막아야”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국가의 주권이 넘어간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수십 년간 개방을 통해 농어촌의 피해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다. 이번 협정의 개방화 피해도 고스란히 농수축산업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김의원은 개방 피해보다 더 핵심적인 것은 국가의 정책주권, 경제주권, 사법주권이 문제라고 강조한다. 자유무역 개방이 아니라 국가 정책수단에 대한 제어가 넘어간다는 말이다.
“여러 가지 복지 정책들에 제동이 걸릴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 재벌에 대한 규제는 의지가 없어서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국내는 물론 외국 재벌에 대해서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김 의원은 이런 엄청난 국가적 재앙이 국회의원들의 무지와 무관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노무현 정부 때도 깊이 보지 못했다. 당시는 동북아균형자론, 동북아금융허브 등을 주창하며 미국의 선진 금융기법을 배워오자는 시절이었다. 2007년 4월 1차 타결 때 무려 2000쪽에 달하는 협정문을 번역도 없이 영문판으로, 책자도 아니고 모니터로, 그것도 국회의원 전원이 아니라 외교통상위원회 위원들만 열람하도록 했다. 뭔 내용인지 전혀 몰랐다는 것이 당시 의원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김 의원은 2006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으로 에프티에이를 반대했는데 개방피해 때문이었다. 그리고 협상을 공개적으로 하라고 요구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아이에스디의 문제점이 알려지면서 당시 법무부가 문제를 지적했고, 천정배 의원은 법무부장관을 그만둔 뒤 국회앞에서 단식 농성을 했다. “에프티에이가 사법주권을 유린한다”는 율사출신 국회의원들의 성명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에 국회 외통위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강행처리 안한 건 그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야당 힘을 빌어서라도 정부가 아이에스디만이라도 미국가서 다시 받아와라 그런 눈치를 본 것이다. 국회에서 끝장토론을 하면서 스스로 정당성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기권표 반대표가 한나라당에서도 많이 나왔다.
이제 대한민국은 복지국가로 가야하는 데 그러려면 독점재벌 시장에 대해 정부가 일정하게 규제해야 한다. 복지프레임이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수출을 위해 개방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다는 수출프레임은 완전히 세뇌가 되어 강한데, 복지 프레임은 주장만 하니까 약하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여다보면 분명해진다. 국내의약품 시장이 연간 10조원 대인데 99.8% 복제약이다. 특허약은 180억원, 0.2%다. 약값의 가격차가 서너 배인데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다 특허권 갖고 있다. 이제 약값은 치솟고 우리 제약사들은 다 몰락한다. 백혈병 치료약 글리벡을 봐라. 약값을 가지고 다국적 기업과 씨름하다 2년동안 국내에 보급이 안되어 환자들이 고통을 당했다. 그 약값을 정부의 기관이 정하는 데도 그랬다. 이제 에프티에이로 약값을 민간검토기구가 정하게 생겼다. 민간위원들이 다국적기업의 로비에 허물어질게 뻔하다. 정부 공직자라면 불러서 국정조사도 하고 감사도 하겠지만… 약값의 고삐가 풀리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고 나중에 의료민영화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는 한번 규제가 완화되면 후퇴를 금지하는 역진불가조항도 있다. 만약협정의 피해가 심각해 폐기를 하려면 대통령의 서면통보 등이 해법인데 후폭풍은 치명적일 거라는 전망이다. 무시무시한 무역보복은 물론이거니와 한-미간 군사동맹 등 두 나라가 ‘끝장’나기 때문에 발효 이전인 지금 반드시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FTA 통과는 ‘정책적 무지가 빚어낸 자화상’
“우리 부모님과 동생은 지금도 고흥 도화면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누나는 부산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하고 있다. 또 나는 학원 강사로 일을 했고,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 플랜트 현장의 배관 노동자였다. 개천에서 용난 식이 아니라 계속 서민들하고 같이 살아왔고 그러다 의회에 갔다.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서민를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바람이 절실했고 운도 따랐다. 농민의 아들, 노동자의 친구로서 탈색이 덜 된 상태에서 의원을 하다보니 권위의식도 상대적으로 적고 두려움도 없다. 의원 자체는 영예롭지만 그걸 유지하는데 연연할 생각은 없다. 의원직 잃어도 다시 생활현장에 가서 일하면 되지….”
그 날의 ‘테러’ 뒤에 “속이 시원하다. 서민의 분노와 아픔을 보여줬다”는 식의 격려와 응원도 많았다. 일부에선 의회 폭력이니 자질이니 시비도 있다. 그러나 김 의원의 얼굴을 직접 마주대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잘 해부렀소” “아이고! 수고 했어요”라는 반응을 보였단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가져올 재앙를 알면 여야를 떠나 그 누구도 그대로 비준할 수는 없으며, 자신을 대놓고 비난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2000쪽이나 되는 협정문을 보지도 않고 통과시킨 의원들이 태반이니 분통이 터진다. 이제부터는 무효화 투쟁이다. 우선은 야당공조를 튼튼히 해서 협정문의 헌법 위반에 대해 위헌심판을 청구할 것이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국민과 소통하는 활동을 하겠다. 농민단체 시민사회단체 지역주민들, 그리고 다른 지역도 찾아다니며 실상을 알리겠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두고 국회 끝장토론을 이끌어내고, 국민투표를 제안하는 등 줄기차게 뛰어온 그는 날치기 통과를 ‘정책적 무지가 빚어낸 자화상’이라고 평가한다.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 제가 희생이 된다 해도 각오하고 있다.”
사람은 자신과 가족에게 닥친 불의에 대해 가장 처절하게 저항한다. 지금 이 땅의 많은 서민들이 김선동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다.
글 = 황풍년 기자 사진 = 최성욱 <다큐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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